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리치 시티 FC (문단 편집) === 2011년 이전 === 1902년 6월 17일, 노리치 시의 카페 크리터리온에서 지역 청년연합교회(CEYMS) 축구부 선수이던 로버트 웹스터, 조셉 카우퍼, 브래드 스켈리 등 3인방이 친구들을 모아 팀을 창단했고, 서던 리그에 참가했다. 그러나 농업지대인 노포크 주에 위치한 데다 제1차 세계대전 등으로 방황을 겪었으나, 1920년에 풋볼 리그로 가입해 비로소 새 출발을 했다. 참가 이래 한동안 하부 리그를 맴돌다 1957년에 사업가 제프리 와틀링(1913~2004)이 회장으로 부임했고, 1969년부터 [[론 손더스]] 감독이 취임하여 팀을 다잡아 1972년에 처음 1부 리그로 승격을 해냈다. 이듬해 지역 정치인 아더 사우스(1914~2003)가 회장으로 부임한 후 [[존 본드]]와 [[켄 브라운]] 감독을 거쳐가며 2부 리그로 강등된 1974-75 시즌을 빼고 한동안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며 1985년 [[풋볼 리그 컵|밀크컵]] 우승을 따내지만, 그 해 일어난 [[헤이젤 참사]]의 여파로 유럽대항전 진출이 좌절되고 리그에선 강등됐고, 회장 자리도 로버트 체이스에게 넘어갔다. 1986년에 1부로 재승격한 후 잉글랜드 클럽의 유럽대항전 진출 금지 때문에 유럽 무대는 밟아보지 못한, 클럽의 전성기와 잉글랜드 축구의 암흑기가 겹친 슬픈 클럽이기도 했다. 맨유에서 데려온 스트라이커 [[마크 로빈스]][* 1989-90 시즌 FA컵 [[크리스탈 팰리스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경질 위기에서 구해낸 선수이다.]와 [[크리스 서튼]], [[게리 멕슨]] 등의 활약에 힘입어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원년인 1992-93 시즌에는 대부분의 기간을 1위에 머물렀으나, 뒷심 부족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우승을 내주고 3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숙원이었던 [[UEFA 컵]]에 드디어 첫 출전을 하게 되고,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에 패하긴 했지만 [[FC 바이에른 뮌헨]]을 꺾는 등 선전을 펼친다.[* 바이에른 뮌헨 원정경기에서 승리한 첫 잉글랜드 클럽이다. 또 이 경기는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최악의 경기 중 하나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러나 해당 시즌 도중, 클럽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마이크 워커]] 감독이 체이스 회장의 이적시장 정책에 불만을 느껴 [[에버튼 FC]]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시즌을 12위로 마감한 뒤 간판 공격수 크리스 서튼을 블랙번에 이적시켰다. 1994-95 시즌 노리치는 전반기에는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후반기 20경기에서 라이벌 [[입스위치 타운 FC]]에게 거둔 1승밖에 거두지 못하여 1부리그에 머문 지 9년 만에 22개 팀 중 20위로 강등당했다. [[위컴 원더러스]]를 2년 사이 아마추어 5부리그에서 3부리그 상위권으로 이끈 [[마틴 오닐]]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지만 승격을 위한 투자에 인색했던 체이스 회장과의 불화 끝에 사임했다. 노리치는 곧바로 승격에 실패했고 체이스 회장은 팬들의 사임 요구 끝에 사임했다. 제프리 와틀링이 잠시 회장으로 복귀했다가 1996년 영국의 유명한 요리 전문가이자 요리책 저자 델리아 스미스와 남편 마이클 윈-존스가 공동명의로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노리치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마이크 워커 감독이 다시 노리치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워커 감독은 노리치를 다시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고, 두 시즌 연속으로 승격하지 못하자 사임했다. [[브루스 리오치]]와 [[브라이언 해밀턴]] 감독을 거쳐 2000-01 시즌 도중 [[나이젤 워싱턴]]이 노리치의 감독이 되어 팀을 3부 강등에서 구출해냈다. 그리고 2001-02 시즌 골득실차로 가까스로 6위를 차지하여 플레이오프에 합류했고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를 준결승에서 격파했으나, 결승에서 [[버밍엄 시티 FC]]에 승부차기로 패하며 승격에 아쉽게 실패했다. 2002-03 시즌에는 초반 14경기에서 8승 5무 1패를 기록하며 승격을 기대했으나 후반기 DTD로 8위에 그쳐 승격에 실패했다. 하지만 2003-04 시즌 2위 웨스트 브롬위치에 승점 8점이 앞선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하며 1995년 강등 이후 9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 시즌 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19위를 기록하며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강등팀이 한 팀도 결정되지 않았던 최종전 전까지 17위로 최종전에서 이기면 생존할 수 있었지만 최종전 풀럼 원정에서 6대0으로(!...) 박살나고 말았다. 강등 이후에도 나이젤 워싱턴 감독은 유임되었지만 강등 후 곧바로 승격에 실패하여 경질설이 돌았고, 2006-07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결국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피터 그랜트]]가 왔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고 그 다음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이에 노리치는 뉴캐슬의 감독을 맡았던 [[글렌 로더]]를 감독으로 선임하지만, 오히려 팀을 개발살내며 60경기에서 20승에 그쳐 2008-09 시즌 3부리그 강등 위기에 몰리자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온 [[브라이언 건]] 감독은 노리치를 구출해내지 못하고 노리치는 1960년 이후 49년 만에 처음으로 3부리그로 강등되었다. 약 50년 만에 3부리그로 강등되었음에도 건 감독을 유임한 것은 논란이 되었고, 3부리그에서의 첫 경기에서 콜체스터에게 홈에서 1:7 대패를 당하자 팬들이 폭발했다. 0:4로 지는 중 어떤 팬이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티켓을 던져버리며 강하게 항의했고, 나머지 관중들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에서 나가버렸다. 결국 브라이언 건 감독은 1:7 참사 이후 6일 만에 감독직에서 경질되었고, 노리치를 7:1로 이겼던 콜체스터의 감독이었던 [[폴 램버트]]가 새 감독으로 선입되었다. 램버트는 팀을 맡자마자 두번 연속으로 승격에 성공하며 클럽을 다시 프리미어 리그로 되돌려놓는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램버트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고 당시 결승전 상대인 [[유벤투스 FC]]의 에이스 [[지네딘 지단]]을 꽁꽁 묶어 우승에 기여했다.]을 맛본 스타 출신인 램버트는 2010-11 시즌 챔피언십 2위로 클럽을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켰고, 스타 선수나 별다른 보강 없이도 승격팀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내며 잔류를 확실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임에도 선수시절의 인연으로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덕에 잉글랜드에서 보기 드문 [[3-5-2]]나 4-3-1-2 등의 전술 구사에도 막힘이 없으며, 이를 바탕으로 상대에 따라 맞춤 전술을 택하여 필요할 때 성과를 내는 등 감독의 지도력이 특히 빛난다는 평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